주방칼을 고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격부터 보게 됩니다. 몇만 원짜리 칼부터 수십만 원이 넘는 제품까지 가격 차이가 크다 보니 비싼 칼일수록 잘 들고 사용하기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러 주방에서 오랫동안 칼을 사용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저 역시 약 17년 동안 다양한 조리 환경에서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칼을 사용했는데요. 가격이나 브랜드보다 실제 작업에서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칼의 길이와 무게, 손잡이 그리고 손에 잡았을 때의 균형이었습니다.
잘 드는 칼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일 사용하는 칼이라면 무엇보다 내 손과 내가 하는 요리에 맞는 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방칼은 먼저 용도부터 정해야 합니다
칼을 구입하기 전에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어떤 음식을 주로 만드는가입니다.
가정에서 채소와 고기, 생선 등 여러 식재료를 하나의 칼로 손질한다면 범용성이 좋은 칼이 편합니다. 일반적인 셰프나이프나 산토쿠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생선을 자주 손질하거나 고기의 힘줄과 지방을 세밀하게 제거하는 작업이 많다면 하나의 칼로 모든 작업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용도에 맞는 칼을 추가하는 편이 훨씬 편합니다.
처음부터 여러 자루를 구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자주 하는 요리에 사용할 기본 칼 한 자루를 제대로 고르는 것이 우선입니다.
칼날 길이는 길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칼날이 길면 한 번에 많은 식재료를 썰 수 있어 작업성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많은 양의 식재료를 다루는 주방에서는 비교적 긴 칼이 편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도마가 작거나 조리 공간이 좁다면 지나치게 긴 칼은 오히려 다루기 불편합니다. 칼끝이 주변 물건에 부딪히거나 손목의 움직임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 주방칼을 구입한다면 자신의 도마 크기와 조리 공간도 함께 살펴보세요. 칼의 크기와 도마의 크기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는 것이 사용하기 편합니다.
무게보다 중요한 것은 무게중심입니다
같은 무게의 칼이라도 손에 잡았을 때 느낌은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칼날 쪽으로 무게가 많이 쏠린 칼은 식재료를 내려 썰 때 힘을 전달하기 좋지만 오래 사용하면 손목이 피곤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손잡이 쪽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칼날을 세밀하게 움직일 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제품을 직접 잡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칼을 평소처럼 잡았을 때 손목에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칼을 들어 움직였을 때 앞이나 뒤로 지나치게 끌리는 느낌이 없는지를 확인해보세요.
온라인으로 구입한다면 제품의 전체 무게뿐 아니라 칼날 길이와 손잡이 구조까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손잡이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칼날의 재질이나 강도는 꼼꼼하게 확인하면서 손잡이는 디자인만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에서는 손잡이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손잡이가 너무 굵거나 얇으면 장시간 사용할 때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젖은 손으로 잡았을 때 지나치게 미끄러운 재질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마다 손 크기와 칼을 잡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편한 손잡이는 없습니다.
특히 칼날과 손잡이가 만나는 부분을 잡는 핀치 그립을 자주 사용한다면 이 부분의 형태와 마감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재는 숫자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주방칼을 알아보다 보면 스테인리스강, 탄소강을 비롯해 다양한 강재 이름과 경도 수치를 만나게 됩니다.
경도가 높은 칼은 일반적으로 날을 오래 유지하는 데 유리하지만 그만큼 관리와 연마가 까다로워질 수 있고, 제품 특성에 따라 충격에 민감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관리하기 편한 스테인리스 계열의 칼은 가정에서 부담 없이 사용하기 좋습니다.
따라서 강도가 높을수록 무조건 좋은 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주 직접 연마하고 관리할 것인지, 아니면 관리가 편한 칼을 원하는지도 선택 기준에 포함해야 합니다.
잘 드는 칼도 결국 관리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잘 들던 칼도 계속 사용하면 날이 무뎌집니다.
이때 칼의 성능만큼 중요한 것이 관리입니다. 적절한 연마가 필요하고, 사용 후에는 깨끗하게 세척한 뒤 물기를 제거해서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도마 선택도 영향을 줍니다. 지나치게 단단한 표면에서 계속 칼질하면 칼날이 빨리 무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나무·플라스틱·실리콘 도마의 특성도 칼과 함께 생각해보면 주방도구를 선택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결국 좋은 주방칼의 기준은 다릅니다
주방칼은 가격표만으로 성능을 판단하기 어려운 도구입니다.
많은 양의 식재료를 빠르게 손질해야 하는 사람과 하루 한두 끼 정도를 준비하는 사람이 원하는 칼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라면 처음 칼을 고를 때 브랜드나 가격보다 용도 → 길이 → 손에 잡히는 느낌 → 무게와 균형 → 관리 난이도 순서로 살펴보겠습니다.
좋은 칼은 반드시 가장 비싼 칼이 아닙니다.
내가 자주 만드는 음식에 잘 맞고, 사용할 때 부담이 없으며, 꾸준히 관리하면서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칼. 결국 그런 칼이 내 주방에서는 가장 좋은 칼이 됩니다.